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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설업계의 산증인이자, 광주·전남 지역 건설사의 신화를 일궈낸 중흥그룹 정창선 회장님께서 2026년 2월 2일 밤, 향년 84세를 일기로 영면에 드셨습니다.
전남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던 중 평온하게 마지막 눈을 감으셨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는데요. 빈소는 광주 VIP장례타운에 마련되었으며, 수많은 정·재계 인사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고인이 남긴 발자취와 중흥그룹이 마주할 새로운 시대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겠습니다. 🕯️


1. 정창선 회장 별세 소식과 건설업계에 남긴 발자취 🤔
정창선 회장님은 1942년생으로, 자본금 1,000만 원으로 시작해 자산 규모 20조 원이 넘는 대기업 집단을 일궈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남긴 발자취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을 넘어, '신뢰'와 '안정'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됩니다.



- 1983년 중흥주택 설립: '중흥S-클래스'라는 브랜드를 통해 국민 주거 안정에 기여하기 시작했습니다.
- 내실 경영의 표본: 외환위기(IMF)와 금융위기 속에서도 단 한 번의 어음도 발행하지 않았던 '무차입 경영' 원칙은 지금도 회자되는 전설적인 일화입니다.
정창선 회장은 생전 "땅을 살 때는 3년치 현금을 들고 있어야 한다"는 철저한 현금 중심 경영을 고수했습니다. 이 원칙이 중흥그룹을 오늘날 재계 20위권으로 끌어올린 핵심 동력이었습니다.
2. '지역 건설사의 신화'에서 대우건설 인수까지의 비결 📊


많은 전문가가 중흥그룹의 정점을 2021년 대우건설 인수로 꼽습니다.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우려를 잠재우고, 인수 후 체계적인 통합 과정을 거쳐 글로벌 건설사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했습니다.
중흥그룹 성장 주요 지표 (추정치)
| 연도 | 주요 성과 | 비고 |
|---|---|---|
| 1983 | 중흥주택 설립 | 광주 지역 기반 시작 |
| 2015 | 대기업 집단 지정 | 전국구 건설사 도약 |
| 2021 | 대우건설 인수 계약 | 재계 순위 수직 상승 |
성공의 비결은 명확했습니다. 철저한 분양 시장분석과 적기 투자, 그리고 과도한 부채를 지지 않는 안정성이었습니다. 고인은 늘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것이 아니라, 다 두들겨 보고 안 부서질 때만 건넌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죠.
3. 경영 철학: '안정 경영'과 '사회적 책임' 🕯️
정창선 회장님의 철학 중 우리가 가장 배워야 할 점은 바로 겸손과 나눔입니다. 수조 원대 자산가였음에도 소박한 생활을 유지하셨고, 장학금 지원과 지역 사회 공헌 활동에 아낌없이 투자하셨습니다.



정창선의 3대 경영 원칙 📝
- 무차입 경영: 빚내서 사업하지 않는다.
- 현장 중심: 답은 현장에 있다.
- 품질 우선: 내가 살 집이라고 생각하고 짓는다.
4. 중흥그룹의 향후 과제와 정원주 회장 체제의 미래 🚀



이제 공은 장남인 정원주 중흥그룹 부회장(대우건설 회장)에게 넘어갔습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경영 전면에 나서 안정적으로 승계 구도를 확립해 왔기에 큰 혼란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도전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 대우건설과의 시너지 극대화: 중흥의 주택 사업 능력과 대우의 해외 인프라 능력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 신성장 동력 확보: 스마트 시티, 친환경 에너지 등 차세대 건설 트렌드 선점.
- ESG 경영 강화: 선대 회장의 나눔 철학을 현대적인 기업 지배구조로 계승하는 것.
상속 및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투명한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
故 정창선 회장 연대표 🕯️


자주 묻는 질문 ❓
정창선 회장님은 "정직하게 벌어서 의미 있게 써라"는 메시지를 몸소 실천한 분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중흥S-클래스'와 '대우건설 푸르지오' 안에는 수많은 사람의 꿈과 안식처가 담겨 있습니다. 고인이 일궈놓은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중흥그룹이 어떤 새로운 미래를 건설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